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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고 바로 내비 찍었다'...왕사남과 살목지가 바꾼 여행

2026. 4. 29.

2026년 6월의 트렌드 미리보기 - PLAY🎈

살목지

스크린 밖으로 나온 영화 속 공간

최근 영화 흥행이 단순한 관람을 넘어 실제 여행 수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 뒤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장소를 직접 찾아가고, 그곳에서 작품의 분위기를 다시 경험하려는 관객들이 늘고 있어요. 올해 이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왕과 사는 남자'와 '살목지'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를 본 관객들은 단종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 청령포와 장릉, 문경새재를 찾고 있습니다. 공포영화 살목지 개봉 이후에는 충남 예산의 저수지 일대에도 방문객이 몰렸어요. 두 작품은 장르와 분위기는 다르지만, 모두 실존하는 장소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6대 왕 단종의 유배지라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합니다. 영화 속 이야기는 창작이지만, 청령포와 장릉처럼 실제 장소가 지금도 남아 있죠. 관객에게 이 공간은 단순한 촬영지가 아니라, 영화의 감정과 실제 역사가 겹쳐지는 장소로 받아들여집니다.

살목지도 비슷합니다. 충남 예산군 광시면의 실제 저수지와 그 곳에 얽힌 괴담이 영화의 소재가 됐습니다. 콘텐츠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실제 장소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이 관객의 호기심을 키우고, 영화 관람 이후 실제 방문해보고픈 욕구로 이어진 것입니다.


영월로 이어진 역사 여행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15일 만에 누적 관객 4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어요. 그리고 강원도 영월은 그 인기를 고스란히 흡수했죠. 영화 속 이야기가 실제 역사 공간과 연결되면서, 관객들이 단순히 촬영지를 둘러보는 것을 넘어 단종의 서사를 따라가는 여행을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배경이 된 영월 청령포로 들어가기 위해 방문객들이 대기하는 모습(출처: 영월군)

영월은 특히 단종의 이야기를 지역 정체성과 오랫동안 연결해 온 곳이라는 점에서, 영화 흥행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청령포와 장릉을 방문하며 영화 속 장면과 실제 역사를 함께 떠올리고, 단종이 머물렀던 공간을 직접 걸으며 작품의 여운을 따라가고 있어요. 숫자로도 인기를 체감할 수 있는데요. 올해 1월 1일부터 4월 5일까지 청령포와 장릉을 찾은 누적 관광객은 23만 9,284명으로 지난해 연간 방문객(26만 3,327명)의 무려 90%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1년치 관광객이 3개월 조금 넘는 기간 만에 찾아온거죠. 관광 수입도 4억 7,753만 원으로, 지난해 연간 수입(4억 5,671만 원)을 이미 넘어섰다고 해요. 스크린 속에 등장한 공간이 현실에서 '단종 순례 코스'로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지출처: 한국관광공사

영화의 인기는 지난 4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59회 단종문화제 흥행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영월군에 따르면 축제 기간 장릉과 청령포를 찾은 방문객은 사흘 간 4만 3천여 명으로, 지난해보다 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올해 초부터 축제 기간까지 장릉과 청령포 누적 방문객도 37만 명을 넘어서며, 영화 흥행이 실제 역사 공간 방문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줬습니다. 

문경새재 역시 촬영지 방문을 넘어 역사 체험형 관광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한복 체험과 같은 프로그램이 확대되면서 관객들은 영화 속 시대 분위기를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됐어요. 문경새재도 2월부터 3월 22일까지 방문객이 전년 대비 59% 늘었습니다. 국내 여행 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나온 이례적인 증가세라는 점에서 영화의 영향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이처럼 왕과 사는 남자 사례는 역사 소재 콘텐츠가 실제 장소, 지역 축제, 체험 프로그램과 결합할 때 관광 수요를 더 오래 이어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살리단길' 되어버린 공포영화 촬영지?

살목지는 영월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여행 수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충남 예산의 저수지, 살목지는 과거부터 공포 목격담과 괴담이 전해져 온 심령 스팟으로 알려져 있었어요. 특히 MBC 심야괴담회에서 한 여성이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겪은 공포스런 사연이 소개된 뒤, 유튜버와 무속인들이 찾는 장소로도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실제 장소와, 이에 얽힌 괴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세트장이 아닌 실제 살목지를 주요 촬영지로 선택했고, 출연자들 역시 촬영 현장에서 겪은 기묘한 비하인드를 전하며 영화의 공포감을 영화 밖으로도 확장했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공간이 아닌, 이미 괴담이 존재하는 장소에서 촬영한 점이 관객의 호기심을 더 자극한 셈입니다.

출처: 네이버블로그(https://m.blog.naver.com/101u202/224251438003)

영화가 흥행하면서 실제 살목지를 찾는 사람도 눈에 띄게 늘었어요. 크리에이터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까지 직접 저수지를 방문해 영화 속 공포가 실제로 어떤 분위기인지 확인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습니다. 관광객들 사이에선 '살리단길'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공포 명소에 힙한 거리 이름을 붙인 거죠.

좌: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 입구에 붙은 '살목지' 안내 현수막 우: 이미지출처:X(@malrang_B)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늦은 시간 살목지로 향하는 차량이 많다는 내비게이션 앱 캡처와 새벽 시간대 차량 행렬 사진이 공유되기도 했죠. 이처럼 살목지는 단순한 촬영지가 아니라, 영화 속 공포를 현실에서 확인하고 인증하는 체험형 장소로 소비되고 있어요. 

출처: 예산군 유튜브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예산군은 공식 유튜브에 '살목지' 패러디 홍보 영상을 올리고, 예산황새공원과 연계한 트레킹 프로그램을 4월 중순부터 시범 도입하며 살목지에 대한 관심을 지역 관광으로도 연결하는 모습입니다.


촬영지 방문 그 이상, 체험형 여행의 확산

업계에서는 이 흐름을 '스크린 투어리즘'으로 부릅니다. 흥미로운 건 장르에 따라 여행 방식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에요. 한 관광업계 관계자는 "사극은 체류형 관광으로, 공포 장르는 체험형·인증형 관광으로 이어지는 등 장르에 따라 소비 방식도 분화되는 흐름"이라 말했습니다. '왕사남' 관객들은 청령포, 장릉, 관풍헌을 연결해서 역사 유적을 걷는 체류형 여행을 하고, '살목지' 관객들은 새벽에 차를 끌고 가서 분위기를 체험하고 SNS에 올리는 방식인 거죠.

두 경우 모두 단순히 촬영지를 구경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영화 속 이야기가 실제 역사든, 실제 괴담이든, 그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직접 가서 경험하려는 것이죠. 세트장 방문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예요.

'왕사남'이 영월을, '살목지'가 예산을 새로운 여행지로 만들었습니다. 한 관광 플랫폼 관계자는 "촬영지 중심의 동선 설계와 체험형 콘텐츠, 숙박·식음 연계 상품까지 함께 구축해야 관광 효과가 장기화될 수 있다"고 했어요. 일회성 방문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역 전체 경험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실존하는 이야기가 있는 장소는 영화 한 편으로 여행지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엔 어떤 영화가 어떤 곳을 바꿔놓을까요?